Barun Medicine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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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의료연구소 입장문]
지역의사제 입법으로는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
1. 요약
- 법안의 실효성 우려: 2025년 12월 2일 국회를 통과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지역의사제법)은 지역 간 의료인력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하나, 10년에 달하는 의무복무에도 불구하고 지역의료 개선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전망된다. 장기간 복무 의무로 중도포기자가 속출하거나 복무 완료 후 대부분 의사가 대도시로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 의료인력 역차별: 지역의사
특별전형으로 의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의무복무 조건부 장학금 혜택을 받는 대신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근무해야 한다. 이는 일반 전형 학생들과 다른 별도 교육과정 및 진로 제한으로 의대 내 분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또한 지역의사전형 입학생이 해당 지역 취업을 사실상 예약받는 특혜를 받는 반면, 일반 학생 중 지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은 역차별을 겪을 수 있다.
- 전공의 수련기간 산입 문제: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전공의 수련기간을 의무복무 기간에 포함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복무지역 밖에서 수련하면
복무기간에 미산입, 복무지역 내 필수전문의 수련은 전부 산입, 기타
전문과목 및 인턴 수련은 절반만 산입된다. 전문의 수련기간 인정으로 만약 전임의까지 하게 된다면, 전문의로서 실질적인 지역복무 기간이 최대 4년까지 단축될 수 있어
제도의 실효성을 한층 더 떨어뜨릴 것으로 보인다.
- 지역의료 왜곡 위험: 지역의사제
도입으로 지역 의료현장의 인력구조가 교란되어 기존 지역 의사들의 이탈과 장기적 의료 공백이 우려된다. 한정된
환자와 일자리를 놓고 의무복무 의사들과 기존 의사들이 경쟁하게 되면, 지역에 남아있던 의사들마저 떠나고 10년 복무 후에는 지역의사들도 대거 대도시로 이동하여 결국 지역 의료가 붕괴될 수 있다.
- 위헌성 및 집행 한계: 복무의무
위반 시 면허정지 및 취소까지 가능하도록 한 처벌 조항은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여 위헌 소지가 크다. 실제 외국 유사제도에서 면허 취소는 위헌으로 간주되어 장학금 환수만으로
의무를 대체하고 있어, 강제근무 규정의 집행력에 한계가 있다. 향후
헌법소원 등을 통해 법안이 무효화될 경우, 지역의사전형은 의대 입학의 편법 통로로 악용되고 혈세만 낭비될
우려가 있다.
2. 지역의사제의 도입 취지와 주요 내용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지역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법률의 골자는 신규 의과대학생 중 일정 비율을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특별 선발하여 학비 전액 등 지원을 하고, 이들에게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간 특정 지역에서의 의무복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를 “복무형 지역의사”로
정의하며, 의무복무를 조건으로 면허에 지역 제한을 거는 조건부 면허가 발급된다. 의무복무 기간 겸직 금지 조항에 따라 복무 완료 전까지는 다른 지역에서 의료업무를 할 수 없으며, 위반 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응할 경우 1년 이내의
면허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3회 이상 면허정지 처분 시 면허취소까지 가능하며, 취소된 면허는 잔여 복무기간 동안 재교부가 금지된다. 다만 이후
의무복무 이행을 조건으로 재교부가 허용될 여지도 남겨두었다.
법안은 또한 별도로 “계약형 지역의사”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이미 면허와 전문의 자격을 가진 의사
중에서 국가·지자체 및 지역 의료기관과 일정 기간(5~10년) 지역 근무 계약을 체결한 의사를 말한다. 정부는 2023년 일부 지역에서 계약형 지역의사 시범사업을 통해 기존 전문의를 모집한 바 있으며, 향후 확대 계획을 밝히고 있다. 복무형(의대 특별전형)과 계약형(기존
전문의 계약) “투트랙” 양성이 지역의사제의 두 축이다. 이번 법률안은 이러한 구조와 함께, 의무복무자의 복무기간 산정 기준을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눈에 띄는 변경점은 “전공의 수련기간의 의무복무 인정” 규정이다. 과거 입법논의 단계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항으로서, 최종 통과된 법안에서는 복무형 지역의사가 전문의 수련을 받는 경우 그 기간을 일부 의무복무로 인정하도록 명문화했다. 구체적으로, 의무복무지역 밖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 그 기간은
복무기간에 포함되지 않지만, 복무지역 내 수련병원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전문과목의 전문의 수련을
받는 경우에는 전 수련기간을 복무로 인정하고, 동일 지역 내라도 지정 과목 이외의 전문과목 수련이나
인턴 수련 기간은 ½만 복무로 인정하도록 구분했다. 요약하면, 지역 내 필수진료과목으로 전문의가 될 경우 3~4년의 수련기간이
통째로 10년 의무복무에 포함되고, 지역 내 기타 전문과목
수련이나 인턴 1년은 절반(½)만 포함되는 것이다. 이 조항은 법안 심사과정에서 새롭게 조정·추가된 사항으로, 전문의 수련을 장려하면서도 의무복무 실효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내용으로 평가된다.
3. 의무복무 10년의
실효성 부족과 위헌성
지역의사제의 가장 큰 쟁점은 졸업 후 10년이라는 장기 의무복무 기간
자체다. 우선, 10년 복무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도 긴 기간으로, 참여자의 중도 이탈을 대량으로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일본의
지역의사제(지역정원제)는
9년 의무복무제를 운영 중이나, 젊은 의사들이 부담을 느껴 복무 도중 이탈하는 사례가 많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19년 이후
복무 중 이탈한 의사를 채용한 도시 대형병원에 보조금 삭감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간접적 제재를 시행 중이지만, 이처럼
강압적 관리 없이는 9~10년 의무복무의 지속성이 담보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1970년대 도입한 공공의대 출신들에게 6년 의무복무를 부과했으나, 의무복무 후 도시로 이탈한 비율이 84%에 달해 정책 취지가 퇴색되었다. 대한민국의 10년 지역의사제도 역시 기간 부담으로 인해 중도 포기 증가와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의무복무 강제조항의 위헌 가능성도 중요한 문제다. 10년간 특정 지역에
묶어두는 것은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과잉금지원칙 위배 소지가 크다는 것이 법조계 다수 의견이다. 실제로
국회 법안심사 과정에서도 위헌 논란이 제기되었으나 여야 합의로 강행 통과되었다는 점에서, 향후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이 상당하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진다면,
지역의사제는 근본부터 무효화되어 버린다. 이 경우 지역의사 특별전형 입학생들은 의무복무
없이 의대 교육을 받는 결과가 되고, 지역의료 개선이라는 당초 목적과 무관하게 단지 의사 수만 늘린
꼴이 되어버린다. 이는 지역의사제 전형이 ‘의대 입학 편법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와도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의무복무 규정이 무력화되면 학생들은 장학금만 반환하고 이후 의무를 회피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률안에는 이러한 의무복무 회피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서 면허취소까지 가능하도록 강한 제재 규정을 두었지만,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헌법적 정당성 문제를 안고 있다. 외국의
유사 제도들은 헌법 및 인권 침해 우려로 면허 취소까지는 규정하지 않고, 불이행 시 장학금 환수나 금전적
페널티로 대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국가보건의료장학제도(NHSC)는 의무기간을 채우지 않을 경우 장학금 반환 및 위약금을 부과하지만 면허에는 영향을 주지 않으며, 일본 역시 면허취소 조항은 위헌이라는 인식 하에 장학금 반환으로 의무를 면제해주고 있다. 결국 대한민국 지역의사제의 면허제재 조항은 법적 분쟁의 소지가 다분하고, 현실적으로
집행되기도 어려워 사문화될 가능성이 있다.
설령 위헌 결정이 나지 않더라도, 법령 집행 단계에서 질병 또는 심신장애
등의 사유로 의무복무를 유예하거나 사실상 면제받는 편법이 남아 있다. 법안에 따르면 질병이나 장애,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부득이한 사유 발생 시 의무복무를 중지할 수 있는데,
질병·심신장애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충분히 주관적 해석 여지가 있고 대통령령 사유도 추후
정부 재량으로 추가될 수 있는 가변적 요소다. 이는 결국 원하는 사람은 의무복무를 피할 구멍이 될 수
있으며, 강력한 제재조항이 있더라도 실제 구속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공의 수련기간 산입 조항 역시 의무복무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다. 앞서
설명했듯, 법안은 일부 전문과목 수련을 의무복무로 인정하여 최대 4년까지
의무복무 기간을 단축시켜 준다. 복무 의사가 전문의를 취득하려는 경우 어차피 수련은 필수적이므로, 대부분 가능한 한 복무지역 내에서 필수과목으로 수련하여 3~4년을
충당하려 할 것이다. 그 결과 실제 지역에서 독립적 의사로 일하는 기간은 6~7년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는 10년 복무의 명목상 숫자와 달리 현장에 기여하는 실질 기간이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
예컨대 내과, 외과, 산부인과
등 정부가 지정하는 필수 전문과목으로 수련한 의사는 전문의 자격 취득 후 불과 6년간만 지역에서 일하면
의무를 끝내고 이탈할 수 있다. 반면 수련을 타 지역에서 받은 의사는
10년을 다 채워야 하므로, 전문의 선택에 따라 의무기간이 들쭉날쭉해져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또한, 지역 내 수련병원 인프라가 취약한 경우 해당 전문과목을 지역에서
수련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수도권에서 수련하고 복무기간이 늘어나게 되는 역설도 생긴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연성 없는 일률적 10년 의무부과가 각 개인별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의과대학 교육과정 차이 및 인력 역차별 문제
지역의사제는 의대 입학 단계부터 일반 전형과 다른 트랙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 제도다. 이로 인해 교육과정과 학사 운영에서도 일반 학생과 지역의사전형 학생 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법안에는 지역의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에게 “공공의료 관련 과정, 해당 지역 내 실습과정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과정”을 추가로 이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공공의료 마인드를 함양하기 위한 특별교육처럼 보이지만, 의과대학의 교과과정은 이미 6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방대한 의학지식을
담아내야 하는 구조다. 실제로 6년제 의대의 평균 재학 기간이 7년을 넘을 정도로 유급과 낙제가 빈번한 현실에서, 일부 학생에게만
별도의 커리큘럼을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 아니라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 학년 내 학생들이 서로 다른 과정을 밟는다면 학사 운영의 혼란과 함께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나아가, 의대 생활에서의 분열과 위화감 조성은 인력 양성의 전 단계부터
불공정 논란을 낳는다. 의과대학은 1~2학년의 예과 과정을
제외하면 매년 같은 커리큘럼을 이수하고 동일한 시기에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년 단위 공동체 성격이 강하다. 이런
환경에서 일부 학생들만 장학금 혜택을 받고 졸업 후 진로가 강제된다는 특수한 신분이라면, 동료 의대생들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과 반목이 생길 수 있다. 입학부터 결정되는 이질적인 교육과정과 향후 진로 차이는
의대 내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지역의사전형 학생들은 장학금 수혜와 의무직장 보장이란 혜택을 받지만
동시에 10년 묶인다는 족쇄를 차게 되고, 일반 전형 학생들은
자유로운 진로 선택이 보장되지만 상대적으로 국가 지원 혜택을 못 받고 특정 분야·지역 취업 시 기회가
제한되는 셈이다. 이는 어느 쪽 학생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며,
동기들 간의 반목과 비교의식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의료인력 역차별 문제도 제기된다. 지역의사전형 출신은 졸업 후 공공병원
등 지정된 지역기관에의 채용이 사실상 보장되지만, 동일 지역에서 평생 일하고자 마음먹은 일반 전형 출신
의사에게는 그런 혜택이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의대생이
일반 전형으로 입학했으나 지역 보건의료에 열의가 있어 졸업 후 지방에 남고자 할 경우, 지역의사전형
출신이 아닌 이유만으로 장학금 지원도, 우선 채용도 받지 못하는 역차별이 발생한다. 오히려 해당 학생은 지역의사제로 충원된 의사들과 같은 지역에서 경쟁해야 하는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즉 자발적으로 지역에 남으려는 의사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또한 지역의사 전형으로 선발되지 못한 지역 출신 수험생들은 의대 입시에서 이미 한 차례 불이익을 받고 시작하는
셈이고, 설령 의사가 되어 고향에 돌아와 일하고 싶어도 지역의사제 출신들과 차별적 처우를 받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인력 운용의 불공정은 의료계 내부 구성원 간 갈등을 야기하고, 궁극적으로 지역의료 향상이라는 공동목표에도 역행할 수 있다.
요컨대, 지역의사제는 취지와 달리 의학교육 현장에서부터 부작용을 수반한다. 교육과정의 이질화로 양질의 의사 양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고, 동료
의사들 사이 단합과 협력의 분위기 대신 불만과 박탈감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이는 장차 지역에서 함께
일해야 할 의료인력 풀(pool)의 사기 저하와 협업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의료는 팀워크와 연대가 중요한데, 출발 단계부터 분열을 야기하는
제도는 오히려 지역의료 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5. 지역 의료체계 왜곡과 장기적 부작용
지역의사제법이 시행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졸업 후 의무 배치되는 지역의사로 인해 일시적인 인력 충원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역 의료체계에 구조적 왜곡과 더 큰 공백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
우선, 지역의 의료인력 수급 구조 왜곡이 우려된다. 의무복무 의사들은 정해진 기간만 지역에 머무르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인력이다. 10년이라는 기간이 길어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전문의 수련
포함 시 실제 임상복무는 그보다 짧고, 전문의 경력으로 보면 숙련도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시점에 의무기간이
종료된다. 복무 종료 시점의 30~40대 중견 의사들은 전문성과
기술이 무르익었을 때라 더욱 대도시 대형병원의 러브콜을 받기 쉽고, 가족의 교육·생활 문제 등으로 수도권 및 대도시로 이동할 유인이 크다. 결과적으로 10년 차를 넘긴 의사 상당수는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는
곧 지역의사제가 숙련된 필수의료 의사들을 10년 묶어 뒀다가 수도권 및 대도시에 공급하는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지역의사제로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던 취지가, 10년
후에는 오히려 수도권 및 대도시 의료인력만 풍부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의료 생태계의 교란으로 인한 기존 인력의 이탈이다. 현재
지방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의사들은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면 새로 투입될 의무복무의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지방의료시장은
애당초 환자 수요와 의료자원이 한정되어 있는데, 국가가 인위적으로 공급을 늘리면 기존 개원의를 비롯한
지역 의사들의 생계와 입지가 위협받는다. 환자는 늘지 않았는데 의사만 늘어나면 1인당 수입 감소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지역의사제 의사들은
국가장학금 혜택을 받아 초기 경제적 부담이 적었던 인력인 반면, 기존 의사들은 개인 비용으로 개원하거나
근무해 온 사람들이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과당 경쟁이 벌어지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인 기존
의사들이 지역을 떠나거나 개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 법 시행으로 지역 간 경쟁이 촉발되면 기존 지역의사들의 이탈은 가속화되고 의무복무의사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구조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의무복무 의사들 역시 10년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상당수가 매년 빠져나갈 것이고, 그 빈자리를 메울 신규 의무복무 의사가 매번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약 시간이 지나면서 의무복무 의사가 더 많이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된다면
이는 더욱 심각한 지역의료 공백 사태를 일으켜 결국 지역의료를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현재도 지방 인구는 줄어들고, 수도권 인구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의사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인원이 수도권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이미 외국의 사례에서도 일부 현실화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지역의사제(지역정원) 도입 후 일부 현(縣)에서 기존 개원의들의 반발과 위화감이 보고되었고, 의사부족 지역에 배치된 젊은 의사들이 경력단절을 우려해 조기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대만 역시 공공의대 출신 의사들을 1970~80년대 농어촌에 배치했지만, 지역 의료기관의 열악한 시설과 낮은 수입에 실망하여 복무 도중 사직하거나, 의무
완료 후 모두 도시로 옮겨가는 결과를 보였다. 이는 지역의료 인프라 개선 없이 인력만 투입해서는 장기적
정착이 어렵다는 교훈을 준다.
또 다른 측면으로, 지역주민의 의료 이용행태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역의사제가 시행되면 지역주민들이 더 이상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진료받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10년 의무로 묶인 의사들이 지역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환자의 신뢰나 의료의 질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역에 배치된 의사들은 미숙하다"거나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인식이 퍼질 경우, 주민들이 중증 질환일수록 더욱 대도시의 숙련된 의사를 찾아가는 역효과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큰 병 걸리면 결국 서울”이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지역의사제만으로 의료격차에 대한
환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어렵다.
한편 의무복무 의사 본인들도 상당수가 의무복무 기간이 끝나면 떠날 것을 전제로 생활하기 때문에, 해당 지역에 장기적인 책임의식이나 투자를 하기 어려운 구조다. 예를
들어 환자와 신뢰 관계를 쌓고 지역사회 보건 향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의 질적 기여가 감소할 수 있다. 이러한
무형의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지역의사제가 표면상의 인력 부족 수치만 채울 뿐 지역 의료의 질적 향상이나
지속가능성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6. 해외 사례와의 비교
한국 지역의사제는 의무복무 기간 면에서 전례 없이 가혹하며 제재 방식도 면허자격 제한이라는 초강경 수단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해외 사례들은 비교적 단기간(수년 이내)의 복무를 전제로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복무 불이행에 대해서도 금전적 제재 위주로 대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의대 정원을 억지로 늘리기보다 이미 배출된 의사가 취약지로 갈 동기를 부여하는 정책에 주력한다. 예컨대 연방정부가 지정 취약지에 월 $4,000~5,000(약 500만~600만원) 생활비를 2년간 지원하고 최소 2년 복무를 유도하는 장학 프로그램이 있으며, 이는 대부분 자신의 고향이나 원하는 지역에서 봉사하고자 하는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주정부 차원의 학자금 대출 탕감제도도 활발하여, 2년간 5만 달러 상당의 학자금 상환 혜택을 조건으로 취약지 의사근무를 유치한다. 이러한
유인책 덕분에 미국은 매년 수천 명의 의사가 농어촌·저소득 지역에 공급되며, 일부는 의무 기간 이후에도 현지에 남는다. 결정적으로 “강제”보다는 “지원” 중심이라 큰 반발 없이도 인력 순환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과 대만의 사례는 한국과 지리적·문화적 유사성이 있어 참고할 가치가
있다. 일본은 강제기간 9년으로 한국(10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지역
정착률 저조와 젊은 의사들의 불만으로 애를 먹고 있다. 최근 일본 각 현은 의무복무 조건을 완화하거나(예: 일부 지역 9년 중
필수의료과로 한정 등) 도시병원 제재 같은 간접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한 번의 계약으로 개인의 삶을 과도하게 구속할 수 없다”는 법적 다툼이 지속 중이다. 대만은 애초에 공중보건의료 인력을 국가에서
길러내겠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재정 부담과 효과 부재로 사실상 실패한 선례다. 이들 사례는 한국이 동일한 전철을 밟을 위험을 보여주며, 개인의
희생을 전제로 한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긴다.
호주의 Bonded Program은 한국과 제도 구상이 유사하나 운용방식은
훨씬 유연하다. 호주는 한때 6년 의무복무를 요구했으나 참여자들의
불만으로 2010년대 후반 의무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고 완료
기한도 졸업 후 18년까지로 크게 늘렸다. 파트타임 이행이나
수련 중 일부 이행도 허용하여 개인 삶의 주기에 맞춰 나눠서 의무를 달성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초기보다 이탈률이 감소하고 제도 만족도가 높아졌다는 보고가 있다. 불이행에 대해서도 의사 면허 자체가
아닌 Medicare 청구 제한(즉 공공보험 혜택 배제) 등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이는 의사로서 일은 할 수
있으나 보험 청구를 못 하면 환자 보기가 어려워지는 간접 제재로서, 면허를 뺏지 않으면서도 효과를 내는
방식을 고민한 흔적이다. 한국도 굳이 지역복무 의무화 정책을 추진하려면, 이처럼 기간과 처벌을 완화하고 참여자 인센티브를 높이는 방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통과된 법안은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종합하면, 해외 어느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10년간 지역의사로 묶어두는 강압적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우며, 이미
시도된 나라들도 효과 미흡으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한국 지역의사제 법안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과 교훈을
무시한 채, 가장 경직되고 위헌성이 높은 방식으로 입법화되었다. 이는
실패가 예견된 정책 실험을 또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7. 결론 및 제언
본 법안의 통과를 접한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지역의사제가 지역의료 격차 해소라는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진정으로 의료취약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대안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의료인력의 “자발적
정착”을 유도하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지역에 의사가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의료수가와 열악한 인프라로 인한 경영난, 낮은 임금, 삶의 질 문제에 기인한다. 현재도 지방 중소병원들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나 의료기사 구인도 어렵다고 할 만큼 전체 보건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나, 정부 대책은 의사 정원
늘리기에만 집중되어 있다. 의사 혼자 모든 진료를 할 수 없고, 간호사·방사선사 등 다른 인력이 함께 있어야 의료서비스 제공이 가능한데도, 이러한
총체적 인력확보 전략 부재는 지역의료 개선을 요원하게 만든다. 저수가 체계 개선과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재정 지원으로 포괄적 보건의료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 의사 수도 중요하지만, 의료팀 전체의 붕괴를 막는 것이 더 시급하다.
둘째, 지역 의료기관의 수익성 제고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지방의 병원들이 떠나는 의사를 붙잡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환자 수는 적고 보험수가마저 낮아 투자여력 부족→시설 노후화 및
인력 부족→의료질 저하→환자 감소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를 끊기 위해 정부가 지역 의료기관의 운영난 해소를 지원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수가 정상화와 세제 혜택, 의료장비·시설 현대화 지원 등을
통해 지역병원의 경영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경영이 나아지면 임금 상승과 근무환경 개선으로 이어져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등도 지방으로 갈 유인이 생긴다.
셋째, 불가피한 의료공백 지역에 한정한 국가지원으로 효율을 높여야
한다. 모든 지역에 획일적으로 의사를 배치하는 방식은 비경제적이며, 자칫
인력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민간의료체계가 유지될 수 없는 인구 희박 지역에는 국가가 직접 보건소
및 공공의료기관에 공공의료팀을 파견하여 기본 의료를 책임지되, 그 외 지역은 민간의료가 활성화되도록
돕는 것이 효율적이다. 현재 대한민국 의료의 90% 이상은
민간 부문이 담당하고 있는데, 민간의료체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 지역까지도 정부가 무리하게 공공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인력과 세금 낭비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러한 지역에서는 민간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결국 지역의료 인프라 개선과 의료 수가 정상화, 교통망 확충 등을 통해 의료인이 지방에서도 수도권 및 대도시 못지않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마지막으로, 입법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 수렴과 현실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지역의사법 통과 과정에서 의료계의 강한 반대와 우려가 있었음에도 국회는 단기간에 법안을
밀어붙였다. 국민 건강과 의료제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법안을 이렇듯 졸속으로 처리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입법자는 인기 영합보다 실효성을, 정치적 성과보다
국민 건강의 장기적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의료 관련 법안은 특히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향후 지역의사제가 시행되더라도, 그 성과와 부작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여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정부와 국회는 진정으로 지역의료를 살릴 방안이 무엇인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잘못된 제도가 한 번 도입되면 부작용을 수습하는 데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지역의사제와 같은 졸속·과잉입법을 자제하고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으로 선회하기를 촉구한다.
바른의료연구소는 이미 지난 수 년간 여러 차례 입장문과 성명, 보도자료
배포 등을 통해 거듭 강조해왔다.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의사제와 같은 강제적 수단만으로는 필수의료·지역의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정부와 국회가 지역의료
강화의 올바른 해법을 찾고자 한다면, 의료인들이 자발적으로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유인 환경 조성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국민 건강에 진정 도움이 되는 길이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포퓰리즘 입법 남발을 중단하고, 의료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어 지속가능한 정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2025년 12월 4일
바 른 의 료 연 구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