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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Barun Medicine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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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0 [입장문] 응급실 뺑뺑이의 실체 중심에는 소방 구급 시스템의 무능과 무리한 판결로 인한 과도한 사법리스크가 있다.

관리자 2025-11-20 09:45:13 조회수 229

[바른의료연구소 입장문]

응급실 뺑뺑이의 실체 중심에는 소방 구급 시스템의 무능과 무리한 판결로 인한 과도한 사법리스크가 있다.

 

-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11 18일 국내 언론들은 앞다투어 지난달 20일 오전 6시경 부산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해당 학교 재학생이 경련 증세를 일으켰으나 부산 및 경남의 여러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환자가 사망한 사건을 '응급실 뺑뺑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최초 기사 내용을 보면 119 구급 대원이 현장에 도착하여 환자를 확인했을 때, 외상 흔적 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어 소아간질에 의한 경련으로 생각하였고, 이에 응급으로 소아신경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알아보다 마땅한 병원이 없어 환자가 사망한 사건으로 보였다.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은 대부분 의사를 욕하는 내용들이었고, 이외에도 의대증원이 필요하다는 뚱딴지 같은 내용, 그리고 법으로 뺑뺑이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까지 다양한 의료계를 향한 성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 까지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다음 날 다른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보면, 경찰 조사결과 해당 학생은 건물 4층에서 추락한 후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 이 사건은 외상에 의한 두부손상으로 일어난 경련 환자를 소아간질 환자로 오인하고, 외상센터 등 신경외과 치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환자를 119 구급대원의 판단 오류로 소아신경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을 수배하다가 이송이 늦어진 안타까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건물 4층에서 추락한 환자이니 다른 외상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외상센터는 24시간 운영되어 언제든 수용이 가능하였을 것인데, 119 구급대원의 판단 오류는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의사도 정확한 진단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선 구급대원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겠으나 최소한의 의학적 지식만 있었어도 다른 판단을 했을 것이라 119 구급대의 전문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질환의 발생 확률을 따져봤을 때, 고등학생이 새벽 시간에 학교 근처 길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면 당연히 확률적으로 매우 드문 소아간질에 의한 경련보다는 외상에 의한 뇌손상 가능성을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설사 정말로 외상 흔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질환 발생 시 환자 사망 가능성이 높은 뇌손상에 의한 경련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병원을 수소문하고 환자를 이송했어야 하는 데 이런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추락이 있었고 유족들이 부검을 진행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외상에 의한 사망임은 자명하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왜 추락 관련 내용은 빠지고 119 구급대의 판단오류도 완전히 배제하고, 오로지 환자를 제 때 받아주지 않은 의사와 의료기관만을 '응급실 뺑뺑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보도가 일제히 터져나오게 된 것인지 그 목적과 정보 제공의 출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악의적 보도가 현재 김윤 의원이 발의하여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속칭 '뺑뺑이 금지법')을 강행하기 위한 정부 및 여당과 소방청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라면, 이는 개인의 큰 아픔을 이용하는 매우 악의적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파렴치한 행태라 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 10월 경남 창원에서 대퇴골 개방성 골절 환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119 구급대는 해당 환자를 중증응급 환자에 해당하는 개방성 골절 환자로 판단하지 않고, 단순 골절 환자로 판단해 중증응급환자로 분류하지 않았고, 이에 권역외상센터에 이송 문의도 하지 않은 채 여러 병원에 연락하다 환자가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언론은 '응급실 뺑뺑이' 이야기만 반복할 뿐, 해당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이렇듯 언론들이 제대로 취재도 하지 않고, 소방청 보도자료 받아쓰기에만 급급하여 악의적 기사만 양산하는 상황에서는 119 구급대의 판단 오류에 따른 문제들도 모두 '응급실 뺑뺑이'로 둔갑시킬 것이고,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 소방청은 응급의료 시스템을 유지하고 관리할 능력이 있는가?

 

현장의 119 구급대원의 잘못된 판단을 개인의 실수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시스템의 문제로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재 소방청이 유지하고 있는 응급환자 이송 및 전원시스템이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가 제대로 작동하던 2012년 이전 시기만 하더라도 응급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하면, 해당 환자를 진찰한 응급실에서는 초기 진단을 내린 후 만약 해당 병원에서 배후 진료가 가능하지 않다면, 배후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스템이 비교적 유기적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하지만 2012 1339 응급의료정보센터가 소방 119로 통합된 이후, 병원간 전원 시스템은 이전처럼 긴밀하게 작동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병원들은 환자를 이송 받아 정확한 환자 상태를 파악하기 전에 먼저 배후 진료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확인하는 관행이 생겼다. , 이러한 원활하지 못한 이송 및 전원 시스템이 각 병원의 응급실에서 배후진료 불가로 인한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와 소방청은 마치 자신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마치 의사와 의료기관의 비협조로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지 말고, 스스로 응급환자 이송 및 전원을 포함한 응급환자 관리 시스템 전반을 제대로 운용할 능력이 부족함을 자인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수용해주기를 바란다. 만약 정부와 소방청이 이러한 조언을 외면하고, 지금처럼 의사 죽이기에만 혈안이 되어 여당 주도의 입법으로 응급환자 수용을 강제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면, 응급의료 현장에 남아 있는 의사는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사법부의 무리한 판결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지 않는가?

 

의사들이 중증응급 환자 수용을 꺼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과도한 사법리스크에 있다. 이번 고등학생 경련 사건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났다. 왜냐하면, 소아간질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병을 볼 수 있는 소아신경과 전문의를 응급상황에서 수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2차 병원에는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존재하지 않으며, 상당 수의 지방 대학병원들에도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거나 있어도 중증환자를 볼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일반 소아청소년과 진료나 신경과 진료라는 대안을 찾지 못하고 소아신경과 전문의만을 수배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세부전문 분야가 아닌 환자를 보다가 문제가 생기면 감당할 수 없는 사법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사실을 의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은 생후 5일 된 신생아의 장 꼬임 응급 수술을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 외과 의사가 시행하였다가 환아에게 심각한 장기 손상 및 인지 저하가 발생한 사건에 대해 소아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 외과 의사가 수술을 담당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하여 10억 원대 배상판결을 내렸다. 응급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수술을 하고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도 징벌이 내려진 것이다. 또한 2015년 대법원은 만 2세 영유아 발작 환자를 치료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아니어서 환자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판단하여 과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의사라면 당연히 모든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음에도 각 전공분야의 전문의, 심지어는 각 전공 내에서도 세부전문의가 아니면 해당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처벌 사례를 지속적으로 양산해 내고 있다.

 

결국 자신의 세부 전문분야가 아닌 질환을 가진 환자가 응급실로 이송되었을 때, 그 환자를 진료했다가 환자의 치료 결과가 잘못되면 감당할 수 없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의사가 선뜻 환자 치료에 나설 수 있겠는가? 현재 수술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소아외과 의사는 20명 남짓으로 알려져 있고, 중증환자를 볼 수 있는 소아신경과 전문의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로 대한민국의 중증 및 응급환자 진료 인프라는 무너져버린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황을 외면한 채 세부 전공만 강조하며 내려지는 무리한 판결로 인해 살릴 수 있는 수많은 생명들은 지금도 희생되고 있다..

 

필수의료라 불리는 중증 및 응급환자 진료 영역을 완전히 망가뜨린 것은 제도를 잘못 설계한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의사들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의사들에게 과도한 사법리스크를 떠안은 채로 무조건 환자 진료를 하라고 강요하기 전에, 제도 설계의 책임이 있는 자신들의 잘못은 없는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의료의 특수성과 현장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판결을 일삼는 사법부도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왜 세계 최고의 의료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사들만 다른 선진국들과는 큰 차이로 과도한 형사처벌과 배상책임을 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아보려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내린 객관적인 내부평가를 통해 자신들의 판단기준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2025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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