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un Medicine Instit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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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의료연구소 보도자료]
정부는 무리한 의대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
2024년 2월 윤석열 정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함께 2025학년도부터 5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하여, 현재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한다고 발표하였다. 정부의 대폭적인 의대증원 추진에 좌절한 수련병원 전공의들은 90%가 사직서를 제출했고, 의대생들도 정든 배움의 전당을 떠났다.
1.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이유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병원과 강의실을 떠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지금도 심각한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감하는데, 은퇴하는 의사도 줄고 있어 오히려 의사 인력 과잉이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증원으로 의사 수가 더 급증하면, 그러잖아도 세계 최저 수준인 국내 의료수가로는 평균적인 삶조차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가질 수 있다. 둘째, 2,000명 증원 발표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사직하려는 전공의들에 대해 정부는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 진료유지 명령, 업무개시 명령 등을 잇달아 내렸다. 이러한 정부의 강제 명령은 어려서부터 자유와 인권을 몸소 체험한 MZ세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주었다. 셋째, 정부는 의대증원의 낙수효과를 운운함으로써 필수의료 의사들을 더욱 자괴감에 빠지게 하였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있던 전공의들을 필수의료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2. 의대증원에 대한 합의
국내 의료체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2020년 9월 4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양측의 합의문에도 정부가 ▲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등의 추진을 즉각 중단하는 대신,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협과 협의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여러 협의기구를 통해 의료계와 의대증원 방안을 충분히 협의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의대증원에 대한 합의 과정은 없었다. 정부가 독단적으로 의대증원을 추진한 것이다.
3. 의대증원 2,000명의 과학적 근거 부재
의대정원 2천 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 역시 찾아볼 수 없다. 정부는 3건의 보고서를 근거로 2035년에 의사 인력 만 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문가 추산과, 취약지역에 필요한 의사 인력 5천 명을 더해 2035년에 만 5천 명이 부족해질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홍윤철 교수는 정부가 제시한 만 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한 적은 없다고 말했고('미래사회 준비를 위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 보고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의 '2021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인구변화의 노동·교육·의료부문 파급효과 전망' 보고서는 "만 명 부족 맞지만 2천 명씩 늘리자고 제안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의료인력 종합계획 및 중장기 수급 추계 연구'에서는 "만 명 부족 이견 없지만 2천 명 증원 맞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향후 국내 의사 수가 과잉이 될 것이라고 추계한 연구 결과도 있다. UC버클리대학교 공중보건학 리처드 셰플러(Richard M Scheffler) 교수 연구팀이 2018년 진행한 OECD 국가의 의사-간호사 부족 및 과잉 예상 연구이다. 여러 변수들을 바탕으로 연구팀은 일반선형모델 수식을 만들었는데, 한국은 2030년에 오히려 의사 수가 3,821명 과잉이라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이 보고서는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국의 의사 수를 추계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Richard M Scheffler, Daniel R Arnold. Projecting shortages and surpluses of doctors and nurses in the OECD: what looms ahead. Health Econ Policy Law. 2019 Apr;14(2):274-290).
따라서 보건복지부가 근거로 제시한 3편의 보고서는 2,000명 의대증원의 과학적 근거가 될 수 없다.
4. 섣부른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국민건강 상의 피해
의료대란 이전에는 아픈 환자들이 원하는 병원에서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란 이후에는 위중한 환자 외에는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늘었고, 환자들이 알아서 여기저기 병원을 수소문해도 아예 갈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통계청의 ‘2024년 10월 인구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2023년 1-3분기 259,118명에 비해 2024년 1-3분기에는 267,619명으로 사망자 수가 8,501명(3.3%)이나 증가하였다. 매년 인구가 감소하는 한국에서 전년 동기보다 사망률이 3.3% 증가한 것은 의료대란의 영향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가장 중요한 책무인 국민건강 보호를 도외시하고, 오로지 증원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결국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이라는 정부의 섣부른 정책은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고, 의료 생태계를 궤멸 수준으로 몰아넣었다.
5. 의대증원 정책 폐기해야
정부가 의료대란을 촉발한 지 1년여가 다 되어가는 현시점에서도, 더군다나 의대증원을 강력히 밀어붙인 대통령이 탄핵된 후에도 정부는 기존 증원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전공의와 의대생들 역시 복귀에 강경한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설령 올해 의대생들이 복귀한다 해도 기존 휴학생에 신입생까지 더해 1년에 7,500명 이상이 수업을 들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현재 병원에 재직 중인 교수들도 과로로 사직하는 마당에 그 수많은 학생들을 도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 학생들이 다 들어갈 강의실이나 실험실이 제대로 갖춰진 대학이 몇 곳이나 되겠는가?
현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정부가 지금이라도 필수의료 패키지를 포함한 모든 의대증원 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지난 1년간 시행한 의대증원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전공의와 의대생, 그리고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최우선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의대 수시에서 정시로 이월된 인원을 대폭 제한하는 것이다.
6. 결론
과학적 근거도 없이 의료개혁이라는 미명 하에 의료를 개악시키고, 국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린 정부는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건강 보호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임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5년 1월 6일
바 른 의 료 연 구 소